지리산2008. 6. 21. 00:25

지난 현충일이 끼어 있던 연휴,
고대하던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원래는 백무동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종주구간을 꿈꾸었으나,
1초만에 마감되는 대피소 예약 경쟁에서 밀려 연하천대피소 예약을 못하는 바람에
백무동~(한신계곡)~세석~장터목~세석~벽소령~음정이라는
오묘한 경로를 택하게 됩니다.
나름 재미있더만요. :)

첫 버스 예약도 놓친 터라 10시 반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
연휴 첫날이라 도로도 막히고, 거의 다 와서 웬 주유? 버스는 기름도 오래 넣더군요. -_-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백무동에 도착, 한신계곡으로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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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짙푸른 유월입니다. 줄지은 인파가 보이시나요?

한신계곡길은 등산지도에도 점선으로 표시된 '3급 험로'입니다.
예약해 둔 세석대피소까지는 가야하는지라, 시간을 단축한다고 택한 길인데,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더군요.
절반 정도는 단화 신고 휴양림 산책하듯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고,
마지막 2km구간이 진정한 3급 등산로입니다. 정말 사람이 다니는 길인가 싶은 곳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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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계곡

길도 좋고 물도 풍부해서 물놀이 하러 오기 딱 좋겠더군요.
손이라도 담그고 싶었지만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ㄷㄷㄷ

하산할 때 계곡을 만나면 꼭 발을 담그자 했건만
정작 하산하는 길에는 계곡이 너무 멀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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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니 고요해보이는 세석대피소

첫날을 보낸 세석대피소입니다.
급히 오른 탓에 3시간 30분만에 도착하긴 했는데,
대피소를 내려다보는 순간, 그 엄청난 인파에 시껍했습니다.

대피소 앞의 헬기착륙장에는 이미 비박하려는 사람들이 비닐을 쫙 깔아놨더군요.
(사진은 다음날 아침이라 꽤 고요해보이네요.ㅎ)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야외 테이블은 빈틈이 없어서, 취사장을 비집고 들어가 서서 밥을 먹었습니다.
비박하는 것까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취사장 바닥을 미리 점령해서 취사대를 사용할 수가 없게 하는 이들은
좀 자제해줬음 싶더군요.

예약자 자리배정이 끝나면 미예약자에게 빈 자리나 복도를 배정하는데요,
그 기준이 성별과 나이입니다. 웬만하면 여자는 복도나마 자리를 잡는 편이라데요.
그런데 이 날은 그야말로 웬만하지도 않아서,
예전에 바글바글하던 장터목에서도 "여자, 65세 이상 남자" 오라고 방송했었는데,
"45세 이상 여자, 65세 이상 남자"를 부르더군요.
그래도 실내는 사람으로 꽉 차서, 정말 난민촌이 따로 없다 싶었어요.
밀도가 높으니 싸우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주변에서 말리지도 않고..
항의하는 등산객에게 관리직원도 죽겠다고 호소하고..ㅋㅋ
여튼 이날 밤새 관리하시던 분, 정말 고생하시더군요. 새벽까지 자리 정리해주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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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 7장 포토샵으로 이어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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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장터목~세석~벽소령이라는 오묘한 길을 간 덕에
거대한 배낭은 세석에 두고 물과 간식, 카메라만 메고 장터목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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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비구름이 하루쯤 늦춰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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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안개가 살풋 깔린 풍경도 그에 못지 않은 비경이더군요.
사진으로는 그 아련함을 도무지 담아낼 수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연신 셔터를 눌러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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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40분, 장터목 대피소. 여기야말로 어젯밤 엄청났을 듯.


길을 왕복하다보니 여러 번 마주치는 사람도 있고..
무엇보다도 능선길을 무거운 배낭 없이 다니다보니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배낭 없이 걷는 능선길은 정말이지 신선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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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봉에서. 대체 저 위에 돌탑을 쌓은 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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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낭을 메고 벽소령으로 갑니다. 벽소령은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가 한결 사람이 적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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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대피소의 일몰

요 앞 빨간우체통은 아마도 하늘과 가장 가까운 우체통입니다.
벽소령 대피소 직인이 찍혀서 배달된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우체국을 거쳐가는 것이니, 우표는 꼭 붙여서 넣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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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명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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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대피소의 야경

셔터를 누를 때는 밤안개가 산을 살짝 가린 야경이었는데, 다시 보니 먼산이 제대로 구별되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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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대피소

지리산을 다니다보면, 대피소마다 직원들의 분위기가 특색이 있는데요,
벽소령은.. 음.. 뭐랄까.. 무뚝뚝한 것 같은데 알고보면 친절하달까요. 뭐, 재밌는 분들이었다는. :)

아침에 믹스커피에 사과까지 얻어먹었는데,
사과는 누가 한 상자를 지고 올라왔다더군요. 대피소분들 드린다고..
언젠가는 저도 한번 해볼랍니다. 좀 덜 무거운 걸루다가..ㅎ
다음 번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서 아는 체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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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정 가는 길

마지막날은 하산만 하면 되는 터라, 천천히 정리하고 내려왔는데요,
장터목에서 음정으로 내려오는 길은 노고단~성삼재 다음으로 쉬운 길이라고 하더군요.
설마 했는데 정말 "쪼끔만" 등산로를 타면 곧 차 바퀴 자국이 있는 산길이 나옵니다.
그 다음부터는 좀 지루하지만 내려가기는 좋은 길입니다. (올라오기는 힘들겠더만요)
다만 너무 길어서, 내려오다 지칩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길어서.
시멘트길이 시작되는 지점쯤에서 마주친 등산객들이 "정상에 다 왔냐"고 물었을 때,
농담도 심하네 싶었는데,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오자 그 말이 절절하게 꽂히더군요.
위 사진에서 계단식 논을 제외한 S자 길이 보이시나요?
오른쪽 길도 보이시나요?
갈림길도 없이, 길은 오직 하나.
설마 하는 길들이 다 걸어야 할 길들입니다. 차라리 안 보이는 게 낫지..

하산길이 험해서 무릎 다칠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안전한 길이지만,
발 담글 계곡이나, 하산 후의 꿀같은 도토리묵, 산채비빔밥.. 이런 걸 꿈꾸신다면 비추입니다.
다 내려오면 강아지와 아이들 뛰어다니는 그냥 조용한 산촌입니다.
삼거리 슈퍼 하나 있더군요. 산나물을 상상하면서 내려와, 코펠 도로 꺼내어 슈퍼에서 컵라면 먹었습니다. 크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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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