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간사이2011. 2. 21. 02:56

한 달 지나 꺼내보는
교토에서의 식사들입니다.

먹을 땐 좀 심심하기도 하고
달거나 짜거나 느끼하기도 했지만
가끔 생각이 나요.





첫 날의 오야코동.
(요건 첫 번째 교토포스팅이랑 살짝 겹치는군요)




첫 날 밤부터 찾아간 음식점이 하필
영어메뉴도 없고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곳이라

주인이 밖까지 나와서 음식 모형을 같이 보고
"치킨"
이라고 말해줘서
겨우 주문할 수 있었던.



게다가 감사하게도 저리 두툼한 단무지를 두 개나 줬어요. ㅠ



야들야들한 달걀소스.
그리웠다고요.










이것은 두 번째 식사.
뚜껑 덮인 음식은
뭔가 기대하게 합니다.











오야코동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닭고기 대신 어묵이 주재료였던 듯.

분명 고노하동이라고 저는 들었는데
돌아와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그런 이름은 없더군요.


그 음식점만의 고유 메뉴거나
제가 맘대로 조합해서 기억하고 있거나.




.
.
.
.


그래요.
저는 히라가나를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가타가나만 떠듬떠듬 읽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가타가나는 까페 같은 데서나(코-히, 아이수쿠리-무) 쪼끔 도움이 되는 정도지
식당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가져간 전자사전. 두둥.



전자사전을 고심 끝에 사두고 바로 스마트폰을 지르는 바람에
완전 반짝이는 자태로 서랍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그 아이가 드디어 빛을 발하려는 순간,





그제서야 알았던 것입니다.
일한사전에는 "만국공통"의 발음기호가 없다는 것을.
일본어사전은 오직 히라가나로만 발음을 표기한다는 것을.
사전을 보려면 히라가나를 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으흑.




그래서 터진 사건.






"일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메뉴는 온통 일어.
쥔장도 온통 일어.




또 쥔장을 성가시게 하며
문밖으로 끌고나와 그림 메뉴를 보고 주문합니다.
아, 일본 음식은 도무지 반찬이란 것에 인색해서
세 숟갈만 먹으면 심심하던 차에,
반찬이 여러 가지 막 있는 그림을 찍습니다.

이거 주세요.
한국말로 합니다.
어차피 영어 해 봐야.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설레입니다.
반찬 가득한 일본정식!!









버뜨






익힌 채소, 달걀말이, 장어, 젓갈, 멸치, 각종 튀김, 달걀+콩요리, 문어, 두부, 오이와 달콤한 된장....

응?





밥을 안 줍니다. ㅠㅠ







그림에서 분명 밥으로 보였던 이 하얀 음식은,
그래요, 연두부였던 것입니다.




혼란에 빠집니다.
이게 뭐임?


밥을 달라고 할까,
메뉴판을 뒤적입니다.
물론 밥이라고 읽을 수 있어서는 아니고,
뭔가 좀 싼 메뉴가 있으면 그게 공기밥이 아닐까, 하는 기대.



없슴다.






라이스 달라고 할까.








모를 겁니다.








전자 사전 뒤져봐도


밥을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가 없슴다.













그래, 문화체험.
겸허한 음식문화의 수용.
 
쌀이 필요하다는 편견을 버려.
원래 이렇게 먹나봐.




맘을 비우니
멸치까지 본연의 맛이 납니다.






그러고 있는 와중에,


아까 그 쥔장, 나타나,
"써비쑤"





누룽지를 놓고 갑니다.
아리가또*100.


 





 

나중에 집에 돌아와 그날의 영수증을 한 자 한 자 맞춰가며 조합한 단어는 바로

"호로요이무세트"
사전을 찾아보니,

ほろ-よい(호로요이) [微酔い]   1. [명사] 얼근하게 취함. 거나함

-_-


어쩌면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열심히 뭐라고 말하던 그 쥔장의 문장 중에는
"술은 뭘로 하시겠어요"도 있었을지도.



 





다음은 금각사(킨카쿠지) 옆의 오무라이스집입니다.






반찬은 생강초절임만 줍니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식을,
이라며 주문한 일본식 오무라이스.

일본에서 생강과 달걀을 정말이지 과다복용하고 있습니다.
오무라이스에서도 생강향이 솔솔 나요.
우리 나라 마늘 쓰듯 생강을 쓰는 듯.


역시 세 숟갈 먹으니 좀 느끼해서
평소에 안 먹던 생강초절임을 무려 세 조각이나 먹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세트메뉴였던 샐러드를 뒤늦게 추가.







허허허허허
난 생양파 따위 먹지 않는단 말입니다. ㅠ






험난한 한끼한끼.






이번에는
외국인을 위한 사진 메뉴가 있습니다.

교토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두부 요리를 먹어봐야지요.
옆 테이블에서 먹는데, 괜찮아보입니다.






요거. 두부탕.
유도후라고 해요.
무려 700엔.(곱하기 13.5=9450원;;;)
(그래도 이것이 여행 중 음식점에서 먹은 가장 저렴한 식사)








음, 이 집은 반찬 인심이 풍부하군요.
가다랑어 국물에 담겨있는 두부를 건져서
오른쪽에 있는 간장소스에 찍어먹습니다.


간단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음식을 보면
한국음식은 정말이지 손이 참 많이도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본 <심야식당>에서도
정말 간단한 음식들이 나오는데,
최고봉은 버터라이스.

버터라이스 주세요, 하면
김이 나는 밥을 살살 퍼서
버터를 사알짝 잘라서
밥 위에 얹어서
줍니다.

냐하



그러면 손님은
거기다가 간장을 조금, 조금만 뿌려서
먹습니다.
그것만.

냐하







마지막 밤.
대충 때우려다가
그래도 일본에 왔으니까,
초밥을 먹어줍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유바를 만나게 되었어요.
떠나기 전, 여행책자에서 보고 신기해했었는데
알고보니 많이 봤었더군요. 전에는 뭐 이래 쭈글한 게 있나, 뭘 말렸나 했는데,
두유를 데워 위에 뜬 지방질을 걷어내 굳힌 것, 바로 "유바"입니다.
장어와 새우 사이에 있는 저 뽀얀 거지요.


가끔 집에서 전자렌지에 우유를 돌리면
얇은 막이 생겨서 입에 후룩 딸려올라오곤 했는데,
그걸 요리로도 먹는군요.
참 세상엔 다양한 요리법이.





그리고 돌아온 지 며칠 뒤
히라가나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