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2009. 1. 19. 20:36
재작년 봄, 남해 상주해수욕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금산을 알게 되었습니다.
높지 않은 곳에 오르면 아름다운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그때부터 계획했던 금산 등반이 이번 여행의 컨셉이 되었습니다.
위험하거나 고되지 않은 한두 시간의 등산과 바다 조망.

그 첫 번째 장소가 남해 금산입니다.


여행의 첫날은 올해 들어 두번 째로 춥다는 날들이 지속되던 지난 주.
방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으면서 노트북으로는 온갖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지요.
마음으론 계획 없는 여행을 해보자 하면서 각종 연락처와 시간표, 코스까지 확보하고,
가방에선 가능한 한 많은 짐을 덜어내고는 가능한 한 많은 옷을 껴입고 렌즈는 두 개 다 챙기고
오늘 가도 될까, 추운데 내일 갈까 하다가 결국 하루 늦은 화요일에 한 시간 늦게 출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남해터미널에 도착합니다.

춥다춥다 해도, 남도는 남도더군요. (우리나라도 넓다는 ㅋ)
서울에선 볼 수 없는 나무가 줄지어 있고, 논밭에는 푸릇푸릇, 비닐하우스도 아닌데 뭔가가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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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이미 오후라 미리 찍어둔 금산산장에 전화를 걸어 찾아가는 방법을 물으니,
택시타고 오라는 이야기만 자꾸 합니다. 이곳이 얼마나 찾기 어려운지 설명하는 데 더 열성인 듯.

기가 확 꺾여서 금산산장은 포기. 상주해수욕장에 있는 찜질방에 전화합니다. 그러나 이곳도 불가.


해는 슬슬 떨어지고 있고, 일단 터미널에 들어온 상주방향 군내버스에 올라타 슬그머니 지도를 들이댑니다.
다행히도 기사님이 힘을 주시는군요. 그래서 금산 등산로 입구에서 내려 무작정 올라가기로 합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등산안내소에서 길을 물어, 열심히 걷습니다.
한번 더 다행히 길은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가끔 까마귀도 까악까악 울어대서, 발길을 재촉해줍니다.
그리고 등 뒤에는 서서히 남해바다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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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 내려다본 남해바다



가을부터 못 받았던 햇살을 오늘 하루 다 받는 양, 날씨가 좋았지만,
내내 가시거리는 그다지 길지 않았지요. 하지만 바다를 내려다보는 데에는 나름 운치가 있더군요.
살포시 몽환적인 남해바다입니다.

여기저기 사진찍을 만한 풍경들이 나타나고, 보리암도 지나갔지만,
해가 지고 있어서 일단은 숙소부터 찾아갑니다.
세번째 다행히도 어두워지기 전 금산산장을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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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00명 정도가 묵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날은 손님이 없어서, 산장주인의 바로 옆방에 묵었습니다.
민박과 산장의 경계가 살짝 허물어지는 방. 그래서 옛날 이름이 '여관'이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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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는 얼굴만한 거울 하나, 벽의 옷걸이 두 개가 전부입니다.
문에는 창호지가 두껍게 발라져 있고, 문고리에 숟가락 끼워야 잠글 수 있는 옛날 문.
문틈 사이가 한참 떠 있고, 창호지도 세 군데나 찢겨져 있어서, 테이프로 바르고 잤답니다. 

산장에서는 '산채백반'을 파는데,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밥먹는, 꼭 그런 모양새입니다.
부뚜막 옆방에서, 맛깔스런 나물이며 꼬막이며 시골 반찬이 쪼로록 놓인 작고 네모난 밥상을 받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꼭 그런 구조의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나네요.
시멘트로 바른 부엌으로 통하는 나무 문이 달려 있던 그 방.
물론 이 산장처럼 무쇠솥이 걸려있는 부엌까지는 아니었지만요.

저녁 먹고 나니 이미 밖은 한밤중. 금새 별이 총총총총...
노고단에서처럼 은하수가 흐를 만큼은 아니지만, 별자리를 세어 보고 싶을 만큼 별은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날이 조금 따뜻했다면, 산장 앞 테이블에 드러누워 버렸겠지요.
그러나 찬 바람을 얼마 견디지 못하고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닥은 따끈하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몸은 서늘해서, 이불을 벗어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덕분에 저녁 8시쯤 취침.

     *                    *                    *

산고양이가 아기처럼 울어대는 새벽입니다.

해는 금산산장 바로 앞에서도 뜹니다만
보리암이 멀지 않아서, 슬슬 올라갔습니다.
얼마만의 일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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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서 구름 너머로 해가 떠올랐지만
마치 검은 산 위의 일출을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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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맞는 보리암과 해수관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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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정상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 산장에서 아침까지 해결하고,
조금 졸다가 짐을 싸서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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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장군암


어제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내려가는 길.
급히 오느라 제대로 보지 못한 풍경들을 하나씩 담습니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장군암의 송악.
꼭 머리카락처럼 붙어있는 모양새도 귀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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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장군암 송악


정말로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갑니다.
저리도 무성하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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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