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2008. 2. 1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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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아니면
대개는 지하철을 탑니다.

어제, 오늘은 우연히도
똑같은 상품을 파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밴드 백 개 포장에 천 원..
회사도 똑같고, 홍보한다고 들고나온,
백 개의 밴드를 줄줄이 붙인 판도 같더군요.

처음엔 같은 사람인가, 했는데
얼굴이야 쳐다보지도 않았으니 어차피 모릅니다만
대사가 완전히 다르더군요.
서두는 비슷하게 나가더니
어느 순간 분위기가 다른 게 느껴집니다.

잘 붙냐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너무 잘붙어서 탈이야~!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요!
회사 이름도 에버레이드,
영원히 붙어서 안 떨어진다는 거지!
말도 안 되지, 어떻게 안 떨어져!

책도 없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있던 터라
무관심한 척,
딴 데 보면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
이 대목에서 훗, 웃음이 났습니다.
민망해서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다가
그 판매원의 분위기에 전염되어
그냥 씩 웃어버렸습니다.

이 밴드 붙이면 피부가 탱탱해집니다!
티비 보세요. 맘만 먹으면 육각수도 만든다는데,
좋은 맘 먹고 붙이면 탱탱해져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며는....

어차피 개당 10원짜리 밴드,
지하철에서 파는 물품의 품질을 누가 신뢰할까요.
다들 최소한의 기능만 기대하면서
싼 맛에 사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차라리 너무나도 적나라한 "뻥"과
장사인지 만담인지 모를 그 사설에,
그리고 그의 분위기에
승객들은 오히려 지갑을 엽니다.

어제 같은 물건을 팔던 분은
십 년 전에 했을 법한 제품 설명을 무미건조하게 늘어놓아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느끼기에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 한 개도 못 팔고 옆 칸으로 갔었지요.
오늘 같은 물건을 들고 나온 이 사람은
제가 본 것만 네 개쯤 팔고 옆 칸으로 가다가 '나도 달라'는 말에 되돌아옵니다.


인터넷에 떠돌던 비슷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제가 여기서 몇 개를 팔 것 같쉼까?
하다가
하나도 못 팔았쉽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쉼다.
그럼 어떡할까요?
옆 칸 갑니다~!

해서 승객들을 와 웃겨놓고 카트 끌고 옆 칸으로 갔다던...


솔직히 말해서,
이런 장면에서 세상의 희망이 어쩌고 훈훈하고.. 이런 식의 결론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오히려 이들의 삶에 화만 꾸역꾸역 나기도 합니다.
다만 오늘같은 날은 까닭모를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달까요.

무지막지한 익명성의 시대에
생면부지의 남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 건, 참 드문 일입니다.

웃기만 하고 하나 팔아드리지도 못했지만
까슬한 마음에 밴드 하나 붙여주셨어요.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아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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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