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2011. 12. 19. 01:02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카파도키아로 갑니다.
비행기를 타고 카파도키아에 접근할 때에는
네부쉐히르와 카이세리. 두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항공편에서는 카이세리행이 더 자주 있었지만,
공항에서 주요 관광지와로의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네부쉐히르 공항으로 가는 편이 낫더군요.


아타튀르크 공항 국내선 청사는 아주 아담합니다.
검색을 마치자 마자 보이는 라운지에서 기다렸다가 터키항공 비행기를 타면
식사시간이 아닌데도 샌드위치와 요거트 등등을 줍니다.
저가항공 중에는 물도 사먹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이리 주시니 먹어야지요. :)
이로써 어제 출발 이후 네 번째 끼니입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지만.

세상에 맛있는 기내식도 있었구나, 하면서 열심히 먹고 치우면 바로 착륙 안내방송.
한 시간쯤 걸려 네부쉐히르 공항에 도착합니다.


 

 

손바닥만한 네부쉐히르 공항.
공항청사의 세로길이는 짐이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길이와 별 차이가 없어요.
버스 터미널 같은 공항을 나오면
배기 스타일 몸빼바지를 입은 터키 여인들이 눈에 들어오고,
공항 앞에 있는 세르비스 버스에 냉큼 올라탑니다.

붙어있는 종이라곤 for free밖에 없고, 네부쉐히르 오토갈(버스터미널) 행이라고는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았지만,
아직 환전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택시 흥정을 하기에는 갓 터키 7시간차, 너무 어린 백성이라서, 믿을 건 이 버스 뿐입니다.


어디로 실려가는지도 모른 채 넓은 벌판을 달리고 달려,
어느덧 번화가로 들어선 버스가 멈추었지만,
아무리 봐도 오토갈 같지는 않고, 심지어 뭔가 아는 듯 보이는 몇몇은 내리지 않습니다.
운전기사는 짐을 내려준다고 먼저 내렸는데,
여기가 어딘지 확인하려고 내려보니 담배피러 사라졌습니다.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만, 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보입니다.
차 뒤편에 있는 아저씨가 아까 그 운전기사를 닮았습니다.
여기 오토갈이냐고 물어보니, 괴레메 가냐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택시를 타라고 합니다.
아, 우리 운전기사가 아니라 택시기사군요.
다시 버스로 돌아옵니다. 난 사기 당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 배낭여행자니까요.

심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건만,
같은 행선지로 추정되는, 웬지 똑똑해보였던 일본 여행객들이 물어보고 돌아오더니 짐을 챙겨 내립니다. 헉.
내려야겠다. -_-

여기가 어딘지 모르기에, 지도 따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닫습니다. 오늘은 일요일.
남대문 뒷골목의 큰손을 만나야만 리라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앞에 캐리어를 돌돌 끌고 가는 이들을 따라가면서
돌무쉬 정류장과 혹시나 있을지 모를 환전소를 찾다가 실패.
동네를 한 바퀴 뱅글 돌고 이리 저리 묻다가 주차되어 있는 경찰차를 발견합니다.

외국에서 경찰차를 타고 있는 가짜 경찰을 만날 확률은
길거리를 걷고 있는 사기꾼 관광업자나 조폭을 만날 확률보다 낮을 터.
경찰차를 노크하고 괴레메, 돌무쉬, 이런 단어들을 나열합니다.


까만 수염이 덥수룩한 터키 경찰 두 명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타라고 합니다.
서로 이름을 틉니다. 동행의 이름은 국제적인 발음을 가졌습니다. 반면 제 이름은 그야말로 한국적이라
제대로 못알아듣습니다. 서리,라고 알려주려니 쏘리로 알아들을까봐 저어됩니다. 관두자.

가깝지 않은 거리를 지나 자그마한 버스정류장이 나타나자,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뒤에 선 버스 기사에게 확인을 한 다음, 버스 타는 곳을 알려주곤,
괴레메,
라고 터키어로 써서 건네줍니다.
이런 친절한... 사..사.. 좋아합니다. *_*


노선번호는 없고, 앞에 괴레메라고 쓰인 버스를 타고
이번에는 괴레메 오토갈에 무사히 도착.

괴레메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괴레메 파노라마 전망대



주변은 온통 바위산이고
그 바위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위에 건물들이 붙어 있지요.
괴레메 오토갈 주변은 온통 숙소와 음식점과 기념품점들.
고난의 역사에서
이제는 관광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로 이어지는 동네.



바위가 반듯하게 구멍나 있습니다.
문도 달려 있고,
창문 모양 구멍도 있고,
벽돌로 쌓아 덧붙인 건물들도 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주변이 다 이렇습니다.

바위는 어떻게 뚫은 건지,
그리고 왜 집을 안 짓고 바위에 구멍을 뚫고 들어간 건지,
돌아다니는 내내 의문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이 지형에 어울릴 법한 느낌,
신기하다거나 신비롭다거나 멋지다거나 경이롭다거나
이런 느낌은 전혀 안 들어서
그게 더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장거리 비행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보다는

너무나도 낯설어서, 였다고 정리했습니다.

여긴 지구의 반대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행성 같았어요.
그래서.



몇몇 군데 숙소를 돌아보면서 위로, 위로 올라갈수록
더 좋고 더 비싼 숙소가 나오더군요. 다시 내려와서,
반은 동굴, 반은 건물이라는 숙소를 어렵사리 잡고 짐을 내린 뒤에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괴레메 야외박물관으로 향합니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은
야외에 뭐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바위 건물(?)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들어가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세상에, 여긴 아치 문양까지.

 




인구의 98%가 이슬람교도라는 나라에 와서
처음 본 유적지가 기독교의 흔적이라는 건 참 어색했지만
그 이전에, 왜 바위 속에?


입장료를 내면 달랑 입장권만 주고
간단한 안내지도도 따로 돈 내고 오디오가이드를 빌려야 주고
건물 앞에 이름표 하나 안내문 한 줄 없군요. 툴툴.

오가면서 가이드인 듯한 이들에게 주워들은 바를 맘대로 조합하면
사암이라서 풍화도 잘 되고 구멍도 잘 뚫리고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서 교인들이 숨어들었던 곳이라는 것 같은데,
그래도 여전히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박해받고 도망친 와중에 바위에 구멍 뚫는 게 빠를까요, 이동식 집 짓는 게 빠를까요?
은신처라는데, 나무도 없는 바위산에 문짝만하게 뚫린 구멍이 은신이 될까요? (꼭대기에 올라가면 너무너무 잘 보입니다.)
미스테리.



 


무수한 의문을 품고는,
다 비슷비슷해서 다 돌았나 여기가 거긴가 하면서
한 바퀴를 돌고(?) 내려옵니다.



 



 



 

 




야외박물관 입구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성 바실 교회가 있습니다.
야외박물관 입장권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10~11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천정과 벽에 빼곡한데, 야외박물관보다 보존상태가 훨씬 좋아요.
아, 그림이구나, 시큰둥, 하다가 나오는 길에 입구에 붙어있는 그림번호와 제목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벽화 아래편에 제목 좀 붙여주면 오죽 좋으랴마는)
입구에서 입장권을 검사하는 직원이 설명을 해줍니다.
동방박사 3인, 와인, 물고기, 마리아와 아기예수. 천국에 가서 아담과 이브를 만나고 등등.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나마라도 들으니 훨씬 많은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네 시쯤이 되자
어머,
해가 뉘엿뉘엿.
허허허허
다섯 시쯤 되니 세상은 이미 암흑.
낯선 동네, 괴레메의 밤은
춥습니다.



버스로 돌아다니기는 힘들어보이고, 택시비도 만만치 않을 듯하여
다음 날은 숙소에서 소개해준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괴레메 지역의 대표적인 여행상품은 네 개.
일출즈음에 열기구를 타는 벌룬투어와 세 종류의 코스 여행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그린투어'의 첫 장소, 파노라마 전망대입니다.

 

 

 

둘째 날도 조금 흐린 아침이 시작되는군요.








 

Posted by [Arte]